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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치료의 시작 - 노먼 카슨즈 체험기

<웃음 치료의 시작 - 노먼 카슨즈 체험기 |>


병은 살려는 의지로 물리칠 수 있다

<세터디 리뷰>지의 편집장인 노먼 카슨즈 씨가 `웃음'과 비타민C로
불치의 진행성 병인 경직성척추염을 고친 얘기는 아주 유명하다.
카슨즈 씨의 얘기는 많은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전세계적으로
`병은 마음에서 오며 마음먹기에 따라 병을 고치기도 하고 진행성을
멈추게도 하는 가능성'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병은 `살려는 의지'에 의해 치유되며, 더욱이 우리 인간은 본래
병을 치유하는 큰 힘을 갖고 있는데도 자기 한정을 해버려 이 힘을 발휘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얘기다. 심근경색의 발증은 마음의 상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물론 모든 병이 정신 상태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병의 경과나 치유에 마음가짐이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따라서 노먼 카슨즈 씨가 어떤 생각을 가졌기에
불치라는 병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치려 했고, 성공했는지 알아보자.
그래서 임상의학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술지<뉴잉글랜드 저널>
1967년 12월호에 실린 노먼 카슨즈 씨의 `병이란 무엇인가(환자의 입장에서)'
를 발췌, 소개한다.


갑작스런 불치의 병

1946년 8월에 내가 외국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약간의 발열이 있었다.
그리고 몸의 통증은 심해져 목,손,발을 움직이기가 어렵게 되었다.
적혈구 침강 반응 속도, 곧 혈침이 올라가서 1시간에 115mm가 되었을 때
입원했다. 정상 혈침은 10mm 정도이다.
입원해서 내가 놀란 것은 검사이다, 검사는 환자를 위해서라기보다 병원
형편에 맞춰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더욱 놀란 것은 4명의
기사가 4개 검사 부분에서 각각 따로 와서 내 피를 뽑아 간 사실이다.
병원이라는 곳은 서로 협력하여 채혈하거나 혈액을 사용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튿날 기사가 여러 개의 용기를 갖고 와서 각 검사 부문을 위해 채혈
하러 왔을 때 나는 거부했다. 그리고 병실 문에 자신의 채혈은 3일에 한번
하고 또 각 검사 부분은 한 번 채혈한 혈액을 사용해야 한다고 방을 붙였다.
나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오랜 친구인 윌리엄.히치히 박사가 나의 주치의가
된것이다. 우리는 20년 사귄 친구로서 그와는 <뉴잉글랜드 저널>이나 <란세트>
에 나온 의학 논문의 내용에 관해 토론을 많이 했었다.
그는 많은 전문가에게 나를 진찰시켰지만 아직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원이 동의한 것은 몸의 조직을 유지하는
콜라겐이라는 물질에 이상(콜라겐병)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교원병이라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몸과 목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피부 밑으로 모래알
같은 망울이 생겼다. 또한 입을 열 수가 없게 되었다. 히치히 박사는
다시 전문가를 불러 검사시킨 결과 나의 병명은 교원병 가운데에서도
경직성척추염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 병이 치유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냐고 히치히 박사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전문가의 말로는 5백 명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이 전문가도 이같은 치유 사례는 자신도 겪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나는 의사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만 있었다.
치료율이 5백분의 1이라고 듣고, 이건 내 자신이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
다고 생각했다. 나는 히치히 박사에게 나의 병원의 원인을 물었더니 그는
이 병이 여러가지 원인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예를 들면 금속 중독증이나
세균 감염의 후유증으로 일어나는 수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병이 나기 직전의 일들을 열심히 생각해 냈다. 나는 1964년 7월에
미소문화교류를 추진하기 위해 미국 대표단의 단장으로서 소련에 갔었다.
회의는 레닌그라드에서 개최되었고 다시 모스크바로 무대를 옮겨 회의가
계속되었다.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였으므로 호텔의 창문은 열어
놓은 채였고 밖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큰 주택공사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고 더욱이 디젤트럭의
배기가스가 밤낮으로 방 안으로 흘러들어 나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구토증이 났다.
게다가 모스크바 공항을 출발하기 위해 기디리고 있을 때 제트기가 방향을
바꾸며 분사한 배기가스를 정면에서 들이마시고 말았다. 그 일을 생각하니
아마도 트럭과 제트기의 배기가스 속의 탄화수소가 뭔가 이 병과 관계가
있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러나 아내도 함께 있었는데 그녀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다. 무슨 까닭일까?
나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했다. 하나는 개인의 체질이고 또 하나는 나의
부신피질계가 지쳐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나는 하찮은 일에도
저항성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밝은 면만 생각하자

나는 지금까지의 의학 논문에서 내분비계, 특히 부신의 기능이 중증관절염
이나 다른 병과 싸우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임신중에 여성이
가끔 관절염이나 류머티즘이 좋아지는 것은 임신중에 부신의 기능이 높아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또 나는 10년 전에 한스.세리에의
<인생의 스트레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세리에는 말한다.
욕구 불만이나 분노를 오랫동안 억제하면 부신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그는 그러한 감정이 신체의 기능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상세히 설명했었다.
그는 감정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의 부신피질 호르몬의 작용을 조사했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마음속의 증오나 적의, 욕구 불만이 몸에 나쁘다면 반대로
적극적인 감정, 예를 들면 사랑, 희망, 신뢰, 웃음, 자신감, 삶의 의욕은 질병 또는 부신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의 대책을 생각했다. 우선 약은 모두 그만두자, 그리고
인생의 밝은 면만을 생각하자고...


비타민 C와 웃음으로...

나는 아스피린, 페닐브다존, 그 밖의 약을 모조리 끊었다. 의학의 치료법은
어떤 시대에는 좋다고 생각되어도 다른 시대에는 나쁠 수가 있다.
가령 환자의 피를 대량으로 빼는 사혈이라는 치료법이 있다. 옛날에는 이것이
거의 모든 병에 좋아 어떤 병이든 빠른 회복을 돕는다고 알려졌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 치료가 단지 환자를 더 약하게 할 뿐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찰스포세의 죽음은 사혈 때문이었고 워싱턴 대통령의 죽음도 사혈로 더
빨라진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음으로 만약 아스피린을 중단한다면 무엇을 사용해야 하나, 나는 어떤
잡지에서 비타민C가 여러 가지 병에 좋다고 읽은 적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비타민C가 부신피질에 작용하여 몸을 치유케 하지는 않을까. 나는 내 나름대로
대량의 비타민을 하루 종일 섭취하기로 했다. 놀랍게도 비타민C를 섭취한 뒤에
나의 혈침은 내려가기 시작했다.
다음은 마음의 문제이다. 나는 물론 밝게 생각하고 희망, 용기, 신뢰등 좋은
감정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할까. 더욱더 자신의
기분을 명랑하게 가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웃음'은 어떨까,
그렇다 웃음이다.
나는 웃음이 넘치는 영화나 TV, 비디오를 대량으로 입수했다. 또 많은 코믹잡지를
읽고 그때마다 되도록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정말로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는 `웃는'시간의
전후에 혈침을 측정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내가 웃음을 실컷 웃고 난
뒤에는 혈침은 항상 5mm 정도 내려가 있었다. 나는 크게 기뻤다.
옛날부터 웃음은 백약중에 으뜸이라는 말이 있더니 참말이다.
나의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치료법을 계속한 지 8일 만에 나의 혈침은 1시간에 80mm가 되고
매일 계속 내려갔다.
2주일 뒤에 나의 아내는 나를 푸에르토리코의 해안으로 일광욕을 위해 데려다
주었다. 첫날은 친구가 나를 바닷가 모래사장에 세워 주었으나 이튿날부터
나는 혼자서 설 수 있었다. 처음에 모래에 닿는 발바닥이 아파서 견딜 수
없었으나 차즘 그것도 없어지고 나는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조금씩이지만
달릴 수되 있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수개월 뒤에 나는 <새터디.리뷰>의
편집일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